15세기 유럽 대항해시대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15세기 근대의 핵심키워드는 르네상스, 종교개혁, 대항해시대이다. 어느 게임의 제목에서와 같이 '대항해시대'라는 단어만으로도 설렌다. 또한 많은 대중매체, 특히 영화를 통해 접하는 큰 바다를 통한 항해, 탐험으로부터의 설렘은 우리 인간의 본연의 기질이 본디 그렇게 되어 있도록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그러나 그러한 인간의 본능으로 우리는 과도한 항해를 하며 우리의 삶을 갉아먹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왜 유럽인들은 신항로를 개척했을까?
단순히 오스만 튀르크족의 콘스탄티노플 점령으로 인한 동방 진출의 어려움이었을까? 당시 해상무역이 발달하던 시기에 바다를 통한 진출의 한계를 찾아보고 싶은 인류의 탐험 본능에서 비롯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대륙에서의 상업적 한계, 르네상스 시기에 들어서면서 종교적인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다른 것을 바라보게 하는 생각을 바탕으로 바다를 통한 항해, 새로운 무역항로를 개척했을 것이다. 물론 바스코 다 가마는 신항로 개척에 있어 귀족들의 사치품인 향신료를 찾기 위해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를 향하고자 했다. 당시 이슬람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과 오스만 제국에 의해 막힌 육로를 고려하면, 가격이 높아져가는 향신료는 단순한 귀족의 소비품이 아니라 커다란 부를 안겨줄 수 있는 사치품이기 때문에 그렇게 신항로를 개척하고자 했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연장선으로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고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대항해시대는 우리 인류에게 밝은 면만을 보여줬을까?
바다를 통한 항해는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기술의 발달을 필요로 한다. 먼저 새로운 대륙과 해양을 통한 항해는 지도가 필수적이다. 또한 방향을 찾을 수 있는 나침반, 풍향을 조절할 수 있는 기능, 별자리, 달의 상태 등을 통한 정확한 항로 파악이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항해사들은 정확한 항해 시간 계산을 위해 해양용 시계를 개발하기도 했다. 또한 장기간의 항해에서 반드시 필요했을 의학분야도 크게 발달했다. 르네상스라는 시대의 흐름은, 인간으로 하여금 단순히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도록 하는 본능을 자극했을 것이다. 또한 봉건사회가 무너져 가는 과정에서 혼란스러운 사회생활, 몰락해 가는 농민들, 상업을 바탕으로 한 계급의 출현과 거상들은 분명 1차적으로는 시대의 어려움, 2차적으로는 변화를 필요로 하는 시대로 접어들게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시대의 모든 것들, 과학의 발전과 상업, 금융업 등은 당시 유럽의 근대를 전후로 하여 생겨나 현재까지 끊임없는 발전을 거듭해 우리에게 삶의 편이를 제공해 줬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각종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가깝게는 환경문제에 대한 인류의 커다란 숙제를 안고 있다. 엘리뇨라는 큰 기후의 영향 아래 기상이변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세계 곳곳에 폭염, 폭설, 폭우, 화재 등으로 인류의 삶이 망가져 가고 있다. 당시 대항해시대는 15세기부터 16세기, 현재가지 불과 500년도 채 안 되는 시간이 흘렀다.
유럽의 중세가 1000년 가까이 계속된 점을 고려하면, 대항해시대로부터 지금까지 불과 5세기 정도밖에 안되는 짧은 기간인 것이다. 신대륙을 발견하게 되었지만 그곳에 살던 원주민들은 노예가 되었으며, 식민지로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인류의 만남은 새로운 문화 간의 충돌, 어느 하나의 문화는 다른 문화에 잠식되어 사라지게 되어버렸다. 또한 새로운 질병으로 인해 전염병으로 죽거나 감염되어, 인구가 감소하는 악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수백만명의 아프리카인이 노예로 끌려가는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까지도 과도한 대항해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는 근대 바스코 다 가마, 콜럼버스, 마젤란 등을 통해 신항로가 개척이 되고, 문명과 문명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포장되는 역사를 주로 배우고, 그 이면의 어두운 것은 배움에서 다소 소홀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저 탐험가의 탐험지는 기억하지만, 탐험으로 인해 죽어간 원주민의 이름은 기억을 하지 않는다. 우리 인류사에 있어서 경제적인 성장 측면과 삶의 편의성 추구 등을 생각하면 무역을 통한 긍정적인 사회적 효용성은 무척이나 효율적인 장치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왜 성장을 해야만 하는 것이며, 그 성장이 더딜 경우 성장, 발전, 등을 위해 그토록 무자비한 방법을 취하는 것일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세계경제가 향하는 방향은 알 수가 없다. 예측조차도 불가능하다. 더욱이 국제정세를 봐도 안정적인 시기도 아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이 땅의 인류가 안정적인 시기가 있었을까? 한편으로는 왜 안정적인 상황을 추구해야 한다고 매스미디어를 통해 논하면서, 경제적인 성장이 필요하다는 표어를 내걸어, 성장하지 못하면 마치 내일이라도 지구가 멸망할 것처럼, 이웃 국가가 망하는 것처럼 떠드는 것일까. 문화적인 교류를 통해, 무역이라는 경제적 도구를 통해 인류는 인간 본연의 호기심과 본능을 달래 왔다. 전혀 불필요한 도구는 아니지만 우리 인류는 지난 500년 간 과도하게 항해를 해온 것은 아닐까?